이게 베토벤이라고?
아다지오 칸타빌레 2010/04/02 16:37 |하루는 날을 잡고 1번만 주야장창 들어보자고 다짐하고 열심히 듣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이야기를 했다.
"누구 음악이지?"
"베토벤 교향곡"
"이게 베토벤이라고?"
베토벤의 1번 교향곡은 보통 베토벤을 알고있는 사람들에게 저런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할 만큼 베토벤스럽지 않다. 보통 베토벤스러움이라고 기대하는 느낌은 "고뇌", "투쟁", "쟁취", "치열함" 등인 가보다.
과연 베토벤은 음악을 작곡할때 음악에 그러한 투쟁, 승리, 고난을 투영하려한것이 맞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지만 적어도 1번 교향곡 만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이든과 모짜르트를 잇는 전통적인 양식 즉, 빠르게, 느리게, 미뉴에트, 빠르게를 고수하고 있고 음상에서도 베토벤 특유의 심각함과 치열함을 찾아볼 수 가 없다. 그의 9개의 교향곡 중 3악장이 미뉴에트로 되어 있는 곡은 8번에서 다시 한번 나타날 뿐이다. 물론 3악장에 스케르쪼 양식을 쓰는것이 베토벤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된것은 아니지만 궁정에서 살랑거리며 춤을 추는 광경을 증오할 것만 같은 베토벤의 이미지와 더불어 그의 전매특허처럼 되어있는것도 사실이다.
최근의 녹음들이 전반적으로 그렇듯 그림에 소개된 음반도 베토벤으로 부터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있다. 1번과 5번 모두 우수한 연주이나 단연 돋보이는것은 1번이다. 아무리 베토벤에게 드리워진 영웅적 고뇌의 이미지를 걷어내려해도 5번 교향곡 만큼은 음악자체에서 느껴지는 느낌때문에 그러한 시도가 성공적 결과를 이끌어내기 쉽지않다. 사실 5번을 작곡할때도 베토벤은 귀가 안들리는 상황이 아니었다. 베토벤의 귀가 완전히 안들리게 된 시기는 그가 죽기전 10년 뿐이었다. 어쨌거나 베토벤은 40살까지는 계속 듣고 있었던 것이다. 완전하진 않지만 자기가 작곡한 음악의 윤곽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의 음악을 듣고있으면 그의 기질은 선척적으로 낙천적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즉, 고뇌와 고통속에서 처절하게 버틴것이 아니라 타고난 낙천성으로 항상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라 불리는 문서가 그의 고뇌를 표현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결코 유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희망적인 내용을 담은 문서이지 않는가. 그의 음악을 들으면 들을 수 록 고통과 고뇌는 환희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기위해 신중하게 고려된 무대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교향곡 1번을 엄중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터무니없는 시각일지 모른다. 1번을 작곡할 시기 베토벤은 세상을 엄중하고 치열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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