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음악은 한번만 들어도 기억에 남게 마련이다. 단 한번만 들어도 주요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고 전체적인 흐름이 머리에 그려진다. 그렇지 않다고 좋지 않은 음악은 아니지만 대체로 명곡이나 친숙한 곡들은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진다. 대표적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3,5,7,9번 같은 곡들은 4개의 악장이 모두 몇번만 들어도 기억에 뚜렷이 남고 다시 들었을 때 쉽게 몇번 몇악장임을 상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있어서 1번 교향곡은 이상하게도 들어도 들어도 각 악장이 구별되지 않고 햇갈리기 일수다.

하루는 날을 잡고 1번만 주야장창 들어보자고 다짐하고 열심히 듣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이야기를 했다.


"누구 음악이지?"
"베토벤 교향곡"
"이게 베토벤이라고?"

베토벤의 1번 교향곡은 보통 베토벤을 알고있는 사람들에게 저런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할 만큼 베토벤스럽지 않다. 보통 베토벤스러움이라고 기대하는 느낌은 "고뇌", "투쟁", "쟁취", "치열함" 등인 가보다.
과연 베토벤은 음악을 작곡할때 음악에 그러한 투쟁, 승리, 고난을 투영하려한것이 맞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지만 적어도 1번 교향곡 만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이든과 모짜르트를 잇는 전통적인 양식 즉, 빠르게, 느리게, 미뉴에트, 빠르게를 고수하고 있고 음상에서도 베토벤 특유의 심각함과 치열함을 찾아볼 수 가 없다. 그의 9개의 교향곡 중 3악장이 미뉴에트로 되어 있는 곡은 8번에서 다시 한번 나타날 뿐이다. 물론 3악장에 스케르쪼 양식을 쓰는것이 베토벤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된것은 아니지만 궁정에서 살랑거리며 춤을 추는 광경을 증오할 것만 같은 베토벤의 이미지와 더불어 그의 전매특허처럼 되어있는것도 사실이다.

최근의 녹음들이 전반적으로 그렇듯 그림에 소개된 음반도 베토벤으로 부터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있다. 1번과 5번 모두 우수한 연주이나 단연 돋보이는것은 1번이다. 아무리 베토벤에게 드리워진 영웅적 고뇌의 이미지를 걷어내려해도 5번 교향곡 만큼은 음악자체에서 느껴지는 느낌때문에 그러한 시도가 성공적 결과를 이끌어내기 쉽지않다. 사실 5번을 작곡할때도 베토벤은 귀가 안들리는 상황이 아니었다. 베토벤의 귀가 완전히 안들리게 된 시기는 그가 죽기전 10년 뿐이었다.  어쨌거나 베토벤은 40살까지는 계속 듣고 있었던 것이다. 완전하진 않지만 자기가 작곡한 음악의 윤곽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의 음악을 듣고있으면 그의 기질은 선척적으로 낙천적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즉, 고뇌와 고통속에서 처절하게 버틴것이 아니라 타고난 낙천성으로 항상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라 불리는 문서가 그의 고뇌를 표현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결코 유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희망적인 내용을 담은 문서이지 않는가. 그의 음악을 들으면 들을 수 록 고통과 고뇌는 환희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기위해 신중하게 고려된 무대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교향곡 1번을 엄중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터무니없는 시각일지 모른다. 1번을 작곡할 시기 베토벤은 세상을 엄중하고 치열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Address :: http://metamath.tistory.com/trackback/1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00년의 난제 :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
카테고리 과학
지은이 가스가 마사히토 (살림MATH, 2009년)
상세보기


최근 우울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털어버리고자 정말 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책을 한권 샀다.
넉넉치 않은 형편으로 인해 사고싶은 책은 많았지만 평소 사고 싶었던 책중에 가장 저렴한 것으로 골랐다.
바로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페렐만에 관한 이야기다.

"단일연결인 3차원의 닫힌 다양체는 3차원 구와 위상동형이다" 라는 푸앵카레추측
피타코라스 정리만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는 다르게 그 내용을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때문에 푸앵카레 추측은 무엇이고 그것을 증명한 페렐만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페렐만은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는 논문을 출판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고, 그 결과로 주어진 필즈메달까지 거부하는 기행을 했다 하니 호기심이 안생길래야 안생길수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은 너무 쉽게 쓰여졌다. 
장점을 보자면 쉽게 읽힌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수학적으로 별 내용이 없다.
수학적으로 별내용이 없다는것은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 될 수 도 있겠다. 이런 책을 읽는 독자에게 위상수학적 개념을
알기쉽게 풀어서 설명한다는것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재미를 추구하는 편이 남는 장사인것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 페렐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피디가 그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따라서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좋아야 했고, 내용 역시 딱 그정도 수준에 머무른다.
그런 이유로 푸앵카레 추측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리고 페렐만에 대해 그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며 이책에서 건질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일까?
책의 전반부에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한 푸앵카레 추측의 의미와 푸앵카레 추측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파파키리아코풀로스와 볼프캉 하켄 박사(4색문제의 해결자인 바로 그 볼프강 하켄이다.)의 대립정도가 이책에서 건질수 있는 흥미있는 내용이다.
덕분에 나도 어느정도는 피상적으로 푸앵카레 추측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3차원 물체(2차원 다양체)의 표면은 2차원 면이다. 지구의 표면, 책상의 표면은 모두 2차원 면으로 나타낼 수 있다.
즉, 구멍이 없는 3차원 곡면은 2차원 평면과 위상동형이다.

차원을 1차원 높이면......
"4차원 물체(3차원 다양체)의 표면은 3차원 공간이다." 라는 명제가 성립힌다.
그리고 이 4차원 물체의 표면(3차원 공간)에 놓여진 폐곡선이 한점으로 축소될수 있다면 그러한 4차원 물체는 3차원 구와 위상동형이다 라는 것이 푸앵카레 추측의 의미라 한다.
책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우주의 모양과 푸앵카레 추측을 연관시키고 있지만 푸앵카레 추측은 어떤 4차원 물체의 위상이 3차원 구와 동형이 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내용이지 우주의 모양이 구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실망스럽지만 푸앵카레 추측이 증명되었지만 실제 우주의 모습은 알 수 없다.

4차원 물체라는 용어가 뭔가 의미에 맞지 않는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는데...... 때문에 아마 수학자들이 다양체라는 개념을 생각해 낸것이 아닌가 싶다. 다양체가 도대체 무엇이냐를 가지고 오래동안 고민했었는데...... 마치 벡터만 알고 텐서가 도대체 무엇이냐? 를 놓고 고민하듯이 말이다. 차원이 확장되어 나갈때 고차원에 존재하는 형상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곡면이라는 개념으로는 부족하다. 벡터만으로 3차원의 응력을 표현하기가 부족한것과 같은 이치로......
고차원에서 일반적으로 형상을 묘사하기 위해서 생각한 개념이 다양체인것이다.
우주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모습이 있기는 한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은 가지지 않는 편이 속편하다. 왜냐하면 그 해답을 찾을 가능성은 내생애에는 적어도 없을테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Address :: http://metamath.tistory.com/trackback/1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0번 교향곡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셉 젤리네크 (세계사, 2008년)
상세보기

   이 책을 사서 읽은 때가 2008년 11월이니까 벌써 1년하고도 2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때 아내는 한참 임신중이었고, 나도 논문의 2단계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을 때로 기억한다. 인터넷에서 광고를 보고 궁금해하다가 11월 어느날 오후(아마 병원을 갔다가 아내와 점심을 먹기로 한것같다.) 서점에서 아내를 기다리다가 충동적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사고나서 인터넷으로 사면 다만 몇백원이라도 더 싸게 샀을텐데 싶어 책을 집으로 들고오는 동안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소설책을 잘 읽지 않는다. 기껏 읽는 책이 설명문인 전공관련 서적들 뿐이다. 그래서 남들은 쉽게 하루에 한권도 읽어버리는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 읽다보면 지루하고 앞의 내용이 아리송해지고 다시 돌아가서 그부분을 찾다 보면 이내 지쳐서 읽기를 포기하고 만다. 아마 어릴때 책읽는 습관을 들이지 못해서 독서 능력이 떨어져 그런것이리라. 하지만 이 소설은 악착같이(?) 다 읽었다. 물론 중간 중간 늘 반복되는 패턴에 빠져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마음을 다 잡고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이야기의 재미는 중간 정도가 아닐까 한다. 베토벤을 좋아하는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클래식 음악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기에는 그리 재미있지 않을 것 같다. 이 소설의 특징은 음악을 소재로 했다는 것과 이야기의 무대가 현대와 19세기를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다. 음악을 소재로 했다는 특징에 딱히 기발한 점은 없다. 음표를 알파벳으로 표기하고 그것을 모스부호와 연결시키고 그런 정보들이 은행 계좌나 비밀번호와 연결되는 내용은 이미 여러 영화나 소설에서 사용되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꼭 그래야만 하는가? 꼭 그래야만 한다!"라는 메모를 감독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는 부분처럼 역사적 사실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는 부분이 첨가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작가가 그런 부분에 좀 더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했더라면 스릴러의 질은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일은 아니니 그냥 평범한 수준에 만족해야할 듯 하다. 다만, 1820년대 오스트리아 빈과 현대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10번 교향곡 악보를 들고 웃음짖고있는 베토벤의 초상화나 스페인 승마학교를 매개로 불멸의 연인까지 엮어 상당히 흥미를 유발 시킨다. 때문에 배경이 현대일때는 다소 지루하고, 19세기 빈으로 옮겨가면 흥미진진해진다. 

  소설에서도 10번 교향곡의 악보는 끝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다. 허구이지만 사실에 입각해야하는 이 소설의 성격상 그럴 수 밖에 없지만, 어쩌면 10번 교향곡은 세상에 나오지 않는 편이 오히려 잘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베토벤은 9번 교향곡을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너무나 어울리도록 작곡해버렸기 때문이다. 전 인류의 화합 이 보다 더 이상적인 가치가 어디 있겠는가? 음악이 어떤 이념을 담아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담아야 한다면 이보다 더 거대한 가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의 작품을 하나라도 더 듣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드라마틱한 그의 삶을 위해서는 9번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왠지 타당해 보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Address :: http://metamath.tistory.com/trackback/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